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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  '다섯 가지(제목)의 나의 기도문'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죽음의 고문이 연이어지는 옥고를 여러 차례 치르고 나온 1939년 2월 5일 주일날, 

죄수복을 그대로 입고 산정현교회 강단에 올라 성도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또다시 옥고를 치르고 그의 가족들도 그가 보는 앞에서 모진 고문을 함께 당하며 협박과 회유를 종용받던 중 광복 1년 전 1944년 4월 21일, 그의 가족의 마지막 면회가 있던 날 밤 9시에 평양 형무소에서 순교한다.










주기철 목사 - '다섯 가지의 나의 기도' (옥중 기도문)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푸른 것이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 제단에 드려지길 바랍니다.

어떤 이는 나에게 왜 괜한 일로 목숨을 거느냐고 말합니다.

또 다른이는 가족 생각은 않고 자기 의지만을 주장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친구는 이제 적절히 타협하고 

먼 훗날을 기약해서 한걸음 물러서자고 합니다.

나 어찌 죽음이 무섭다고 주님을 모른 체 하겠습니까?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7-8)


나는 지난 7개월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특별히 다섯가지 종목을 들어 기도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 시간 그 기도의 내용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성도들 앞에 

'다섯 종목의 나의 기원'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바야흐로 죽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나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검은 손은 시시각각 닥쳐오고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나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만물이 다 죽음 앞에서 탄식하며, 

무릇 숨쉬는 인생은 다 죽음 앞에서 떨고 슬퍼합니다. 

죽음이 두려워 의를 버리며 

죽음을 면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의 수제자 베르도도 죽음이 두려워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를 부인하고 계집종 앞에서도 모른다고 맹세하였으니, 

누가 감히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장담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을 위하여 열백 번 죽음은 좋지만 

주님을 버리고 백년, 천년 산다 한들 그 무슨 삶이리오! 

오, 주여! 이 목숨을 아끼어 주님께 욕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달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 두 손과 두 발이 

쇠못에 찢어져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쏟으셨습니다. 

주님 나를 위하여 죽으셨거늘, 

내 어찌 죽음이 무서워 주님을 모르는 체하오리까? 

다만 일사각오가 있을 뿐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 속에서 3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 

사망의 권세를 죽이신 예수여! 

나도 주님 믿고 사망의 권세를 내 발 아래 밟게 하시옵소서. 

죽음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나는 부활하신 예수를 믿고 나도 부활하리로다. 

소나무는 죽기 전에 찍어야 시푸르고, 

백합화는 시들기 전에 떨어져야 향기롭습니다. 

세례 요한은 33세, 스데반은 청장년의 뜨거운 피를 뿌렸습니다. 

이 몸도 시들기 전에 주님의 제단에 제물이 되어지리이다.


둘째, 장기의 고난을 견디게 하여 주시옵소서. 

단번에 받는 고난은 이길 수 있으나 

오래 끄는 장기간의 고난은 참기 어렵습니다. 

칼로 베고 불로 지지는 형벌이라도 

한두 번에 주어진다면 그래도 이길 수 있으나, 

한 달, 두 달, 일 년, 십 년, 계속되는 고난은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절대 면할 수 없는 형벌이라면 할 수 없이 당하지만, 

한 걸음만 양보하면 그 무서운 형벌이라면 할 수 없이 당하지만, 

한 걸음만 양보하면 그 무서운 형벌을 면하고 

도리어 상을 준다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말 한 마디만 타협하면 살려 주는데, 용감한 신자도 넘어지게 됩니다. 

하물며 나같이 연약한 약졸이 어떻게 장기간의 고난?! ? 견디어 배기겠습니까? 

다만 주님께 의지할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십자가! 십자가! 오직 내 주님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갑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욕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께서 

'너는 내 이름으로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 하고 왔느냐' 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께서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를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오리까?


셋째,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내게는 팔십을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아들로서의 의무도 귀중하고 가장, 아비 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자식을 아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부모를 생각하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어머님이 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우시고 가르치신 은혜 태산같이 높습니다. !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잡혀 다니는 불효자의 신세, 

어머님의 은혜, 더욱 간절합니다. 

어머님이 금지옥엽으로 길러 주신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이고 매 맞아 상할 때, 

내 어머님 가슴이 얼마나 아프셨을꼬! 

춘풍추우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 고요한 달빛이 철장에 새어들 때, 

어머님 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려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을 봉양한다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의 아픔도 잊으시고,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는 어머님을 

제자 요한에게 부탁한 주님께 나도 내 어머님을 부탁합니다.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불능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도 주님의 자취를 따라가렵니다. 

나의 병든 아내도 주님 손에 부탁하는 것이 

이 못난 사람의 도움보다 좋을 줄 압니다. 

나의 어린 자식들을 자비하신 주님 품에 두는 것이 

변변치 못한 아비의 손으로 기르는 것보다 복될 줄 믿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양떼를 두고 가는 이 내 마음 차마 못할 일이오나, 

저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주님께서 지켜 주실 줄을 믿사옵나이다. 


넷째,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옵소서. 

못합니다,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우상 때문에 정절을 잃어버리지 못합니다. 

이 몸이 어려서 예수안에서 자랐고, 

예수께 헌신하기로 열 번, 백 번 맹세하였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밥 얻어먹고 영광을 받다가 

하나님의 계명이 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게 되는 오늘, 

이 몸이 어찌 구구도생 피할 수가 있사오리까? 

아! 내 주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구나. 

평양아! 평양아! 예의 동방에 내 예루살렘아! 영광에 네게서 떠나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백세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아무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살으사이다. 


다섯째,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오! 주님 예수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십자가를 붙잡고 쓰러질 때에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옥중에서나 사형장에서나 내 목숨 끊어질 때에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아버지의 집은 나의 집, 아버지의 나라는 나의 고향이로소이다.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씻어서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 황금길을 걷게 하옵시고, 

죄악 세상에서 부대끼던 나를 깨끗케 하사 영광의 조건에 서게 하옵소서. 

내 영혼을 주께 부탁하나이다. 아멘.



주기철 목사 (1897~1944)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순교자 소양(蘇羊) 주기철 목사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 순교하였다. 그는 1897년 11월 25일 경남 창원 웅천에서 태어나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 입학하여 이승훈, 조만식, 이광수 등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20살이 되던 1917년에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안질환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청년운동과 교회의 집사로서 열심히 충성하였다. 김익두 목사의 마산 집회에서 성직에 대한 소명을 받았고 1925년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했다.

일제 말기에 부산 초량교회 위임목사로 시무하면서 신사참배 등을 정면으로 규탄하고 반대하다가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1936년 7월에 평양 산정현교회에 부임하였고 이곳에서도 여러 차례 투옥되었다. 마지막 양심의 보루로 남았던 장로교마저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라고 가결하자 목사직 파면의 위협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5가지(제목)의 나의 기도"란 제목 하에 그의 유언적 일사각오의 설교를 하며 마지막까지 강단을 지키다가 1939년 9월 3차로 검속되었다. 그 해 12월 19일 평양 임시노회에서는 주 목사를 목사직에서 파면 처분을 결의 하였고 1940년 3월 24일, 평양 산정현교회당이 완전히 폐쇄당하고 가족들은 목사관 사택에서 추방당하였다. 


1941년 여름, 주기철 목사는 황실불경죄, 치안유지법 위반 이라는 죄목으로 10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모진 고문에 지병인 안질환의 악화와 폐와 심장병이 겹쳐 고통을 겪는 중 1944년 4월 13일에 병감으로 이감되었으며 일주일 후인 4월 21일 밤 9시에 평양 형무소 병감에서 49세의 일기로 순교하였다. 국가에서는 1968년 7월 9일에 그를 애국선열의 한 사람으로 추대하여 동작동 국립묘지에 그의 유해를 안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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